항암 시작 전, 탈모를 준비하며 내가 챙긴 것들
항암 치료를 앞두고 가장 두려웠던 것 중 하나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변화가 현실이 되었을 때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외형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심리적인 충격도 클 수밖에 없기에 마음과 몸을 모두 대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글에서는 항암 시작 전, 탈모를 준비하며 내가 실제로 챙겼던 것들을 정보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마음의 준비: 탈모를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법
처음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권유받았을 때, 치료보다도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박혔다. 여성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단순한 외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존감, 나다움, 익숙한 나의 모습과 연결된 요소였기에 머리카락을 잃는다는 건 나의 일부분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나는 ‘탈모를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병원에서 받은 자료를 읽고, 유방암 선배들의 블로그나 유튜브 후기를 찾아보며 어떤 변화가 올지, 그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나타나는지를 미리 확인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는 것보다는, 알고 맞이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또한 가족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이에게는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남편에게는 변화하는 모습에 놀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주변의 시선이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나의 상태를 먼저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만들면 조금은 덜 외로워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머리카락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계속 다짐하는 것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건 일시적인 변화야’, ‘나는 여전히 나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몸의 준비: 탈모 전에 미리 챙긴 아이템 리스트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아이템들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갑작스러운 탈모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선 실질적인 준비가 꼭 필요하다.
① 부드러운 면 소재 모자
두피가 민감해질 것을 대비해 이음새가 적고 부드러운 면 소재의 얇은 모자를 준비했다. 실내에서도 부담 없이 쓸 수 있고, 외출 시에도 활용 가능하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중간 단계부터 사용하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② 얇은 두건 & 스카프
여름철이나 더운 날엔 두꺼운 모자 대신 가벼운 두건이 훨씬 좋다. 머리를 감싼 후 위에 스카프처럼 감아 스타일링할 수 있어 실용성과 패션을 동시에 만족시켜준다.
③ 위생적인 베개 커버
머리카락이 많이 빠질 때는 베개 위에도 빠진 머리카락이 쌓이게 된다. 그 모습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밝은색보다는 진한색 커버를 선택했고, 소재는 부드러운 순면으로 정했다. 자주 세탁할 수 있도록 여분을 여러 장 준비해두었다.
④ 두피 마사지기 & 민감 두피 샴푸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부터 두피를 부드럽게 자극해주면 순환에 도움이 된다. 실리콘 재질의 부드러운 마사지기를 준비했고, 자극 없는 무실리콘 샴푸도 함께 사용했다. 치료가 시작되면 두피도 예민해지기 때문에 미리 적응해두는 것이 좋다.
⑤ 포근한 실내용 비니
치료 후 집 안에서도 두피가 예민해지기 때문에 보온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니트 비니는 추운 날이나 에어컨 아래서 쓸 수 있어 실용적이다. 외출용 모자와는 다른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하나쯤 준비해두는 걸 추천한다.
⑥ 사진 한 장
머리카락이 풍성했던 내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을 화장대에 붙여두었다. 지금의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주기 위함이다. 이 사진은 힘든 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탈모가 시작되었을 때를 위한 작은 실천들
탈모가 시작되면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 전부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상상하고, 대처 계획을 세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빗질 줄이기, 머리 묶지 않기
탈모가 시작되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느낌에 민감해진다. 빗질을 줄이고, 머리를 세게 묶는 습관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완된 상태로 두는 것이 두피에도 부담이 덜하다.
거울 보는 횟수 줄이기
머리카락이 빠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면 감정적으로 더 힘들어진다. 거울을 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집요하게 관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록하기
그날의 감정을 글로 쓰거나, 짧게 음성 녹음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탈모라는 외형적 변화에 흔들리는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자신만의 루틴 만들기
예를 들어 아침에 거울을 보기 전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음악을 틀어놓는 루틴을 만들었다. 탈모가 중심이 아닌, 나의 하루가 중심이 되도록 하는 작은 실천이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며 탈모를 준비한다는 건 단순한 외형을 가리는 준비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이 빠지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그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이겨낸 거라 믿는다.